비정한 균형 [월간미술 5월호 칼럼] 

김경미 | 예술감독, NMARA(뉴미디어아트연구회) 대표

나는 통영국제트리엔날레 예술감독이었다. 현재 통영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트리엔날레 예술 감독으로 2021년 2월 감독선정 기획발표를 거쳐 3월에 임명되었다. 나는 큐레이토리얼팀을 꾸려 기획을 진행해오다가 납득할 만한 사유와 정당한 절차, 단 한 번의 소명의 기회도 없이 6월 내부 회의석상에서 통영국제트리엔날레 추진단 단장에 의해 직무배제를 당하였다. 바로 이틀 후 진행하던 섬의 날 기념 통영국제트리엔날레 사전 전시 팀의 초기 기획 아이디어를 뺏긴 후 작가팀 전체가 하차하고 내가 섭외한 해외협력감독, 사운드아트 큐레이터 등이 줄줄이 사퇴하였으며, 추천한 주제전 작가들이 전원 배제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이러한 사태의 부당함을 바로잡기 위해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에 직무배제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과 무효확인 소송을 냈다.

나는 주제전의 주제로 통영인 낳은 대문호 박경리 선생님의 생태시 사상인 ‘비정한 균형’에 주목했다. 그러나 이 주제어에 대한 통영시 공무원들의 반감은 격렬했다. 나는 탄생과 죽음이 동시에 존재할 때 생명은 존재하며, 현실적 삶의 현장에서 상이한 것들이 비정할 정도로 긴장할 때 생명의 능동성이 분출한다는 선생님의 이 사상에 경의를 표하고 이 주제로 주제전을 기획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었다. 다만 ‘비정한’이라는 형용사를 표면적 번역한 ‘heartless’ 혹은 ‘cruel’보다 그 내포된 함의를 좀 더 깊고 포괄적으로 다룰 수 있는 ‘turbulent’를 선택하여 ‘격동하는’ 의미의 Turbulent Balance를 썼다. 그러나 이 주제는 끝내 채택되지 못했는데 이 트리엔날레가 현 시장의 공약 사업으로 기획된 취지에 걸맞지 않게 주제어가 너무 어둡다는 것이 이유 아닌 이유였다.

이 트리엔날레의 구조적인 문제점은 예술감독 임명 전에 실행업체가 내정되어 있던 점이다. 예술감독의 계약서에도 나와 있는 임무에 의하면 트리엔날레의 개념, 방향성 정립, 프로그램 및 업무 전반을 총괄하는 예술감독과 그 예술감독이 구성하는 큐레이토리얼팀에 의해 주제전과 특별전의 기획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예술감독이 임명된 달인 바로 2021년 3월, 4월에 추진단 단장과 이벤트 업체에 의한 종합실행계획 발표로 예술감독의 기획이 반영될 수 없었던 점, 전시용도로 어려운 천고가 낮은 폐 사무실 건물이 주제전 전시장소로 정해진 점, 80억 예산에 주제전이 기존 비엔날레들과 달리 프린지 페스티벌 수준으로 배정되었던 점이 핵심적인 갈등요소였다. 또한 작년 예술감독 선정 기획 발표 때 제시한 기획 아이디어인 바람 데이터를 이용한 섬잇기 프로젝트는 사운드스케이프스 전문가인 독일과 한국의 작곡가, 데이터비주얼라이제이션, 프로젝션맵핑, 설치미술 전문 작가 팀으로 구성하여 8월 섬의 날 기념 기간 동안 전시될 계획이었다. 그 작품의 제목은 <Windscapes: The Voices of Islands>였다. 그러나 추진단은 그 팀을 하차 시키고 3일만에 만든 제목은 <Datascapes: The Sound of Tongyeong>이였다. 나는 강력하게 우리나라 현행 저작권법은 ‘아이디어는 보호하지 않고 표현을 보호’하니 표현이라도 최대한 다르게하라고 항의하였다. 최종적으로 <570: 클라우즈 오브 통영>제목으로 섬의 사운드를 채취하여 가공하고 바람 데이터를 이용한 데이터비주얼라이제이션은 포인트 클라우드 기법으로 대체되었다. 파국으로 치달을 때 내가 ‘비정한 균형’ 대신 제시한 ‘섬들의 목소리 The Voices of Islands’ 타이틀을 추진단 단장은 무시했다. 현재 주제전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는 건물의 낮은 천고를 보완하고 프로젝터와 스피커 등의 장비를 매달기 위해 천정의 패널을 뜯어야한다는 지적도 수긍하지 않았다. 통영시민문화회관의 대강당의 노후한 의자를 교체하기위해 뜯은 계단에서 주제전 전시를 하라고 하는 황당한 처사에 기획을 전혀 진행할 수 없었다. 내가 결국 해임되고 새로 외국인 큐레이터와 기존 공예 큐레이터가 기획을 해서 전시중인 트리엔날레에서는 나의 제안과 지적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한계성과 구조적 결함들이 여실히 드러나 현재 지방 언론사들이 앞다투어 문제점을 보도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이런 모든 상황들을 겪고 나서 올해 2022년 2월 19일 우리 예술계의 영향력 있는 전문가분들과 함께 ‘한국예술기획자협회 KADA (Korea Art Directors Association)’를 창립했다. 예술감독과 기획자의 불공정 계약 및 전문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현장의 구조적인 문제점과 관행을 타파하고 기획 아이디어가 보호 받지 못하는 현실의 상황을 타개해 나가기 위해 연대하는 단체를 만들었다. 앞으로 우리 협회는 기획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입법청원과 함께 NFT 기획 아이디어 보호 시스템과 여러 장르 작가들과 엔지니어, 기획자들이 교류하는 네트워크 인프라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많은 분들이 내가 이 저항을 시작하기 전에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만류했었다. 나는 계란이 아닌 물로 하는 바위치기라 생각한다. 언젠가는 그 물로 바위가 쪼개지는 날이 올 것이다. 나와 같은 개인 기획자, 예술감독은 미약한 파티클과 같은 물 한 방울 일지 모르나 KADA는 그 물들이 모인 파도와 같이 힘차게 격동하며 균형을 찾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