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기획자협회 성명서(2022.05.18.)
‘2022 제1회 통영국제트리엔날레‘의
편법/변칙운영과 예술기획자에 대한 갑질을 규탄한다.
한국예술기획자협회(이하 ’협회’)는, 2022 제1회 통영국제트리엔날레를 주관한 통영한산대첩문화재단(이하, ‘문화재단’)과 통영시장의 TF팀인 통영국제트리엔날레추진단(이하, ‘추진단’)이 예술감독의 후보들 중에서 자신들이 추대하고, 적법한 계약에 의하여 임명하여, 임무를 수행중이던 예술감독을 전혀 근거 없는 이유들을 대면서 제대로 된 소명절차를 거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직무배제한 후, 이를 꿰맞추듯이 다시 해임까지 강행한 만행을 강력히 규탄합니다.
그리고 문화재단과 추진단은 사업전반에서 갖가지 편법·변칙운영을 반복함으로써, 통영의 문화예술진흥을 도모하고자 했던 통영트리엔날레의 질을 현격히 떨어뜨리고, 예술기획자의 권익을 크게 침해하였을 뿐 아니라, 공공의 예산으로 시행되는 문화행사를 현직시장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는 의혹이 있다는 판단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본 협회 회원일동은 이러한 불순한 의도와 부당한 과정 그리고 부실한 결과를 낳은 일련의 행위가 문화예술 전반에 끼칠 심각한 악영향에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의 예술문화기획전문인력들이 이 사건을 ‘왜곡되고 편법적인 운영 때문에 실패한 문화예술행사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기억하고 후일에 대한 성찰과 반성의 자료로 삼을 것을 제안합니다.
문화재단과 추진단은 2021년 3월에 임명된 예술감독으로 하여금 통영국제트리엔날레의 “개념, 방향성 정립, 프로그램 세부기획 및 구성 등 업무계획 전반을 총괄”하도록 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임무를 맡긴 후, 이와는 별도로 ‘통영국제트리엔날레 종합실행계획’이라는 연구용역을 발주했던 A업체에게 2021년 3월~4월에 ‘종합실행계획서’를 작성하도록 하였으며, 이어 9월~10월에 발주된 ‘전시공간조성 및 행사운영 용역’(용역비 33억7천만원)에서는 입찰에 참여한 A업체 이외의 다른 3개 업체에는 기 납품된 ‘종합실행계획서‘를 공개 혹은 제공하지 않은 채 입찰을 실시함으로써, 일방적으로 A업체에게만 유리한 조건을 부여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공개입찰심사에서 같은 A업체와 이해관계에 있는 인사를 심사위원으로 위촉한 등의 의혹이 언론에 이미 보도된 바 있습니다.(통영신문, 2021.11.04.“통영국제트리엔날레 33억입찰, 밀어주기 논란”)
문화재단과 추진단은 자신들이 스스로 선임하여 계약을 체결한 예술감독과 큐레이터가 수행하던 업무에 시종일관 비협조적이었으며, 급기야 이들에 대해 근거 없는 이유들을 들어, 또한 소명의 기회도 부여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직무배제처분을 내린 후에, 예술감독과 큐레이터가 개발해 놓은 아이디어를 무단 도용하여 사용한 정황도 있습니다.
이상의 여러 의혹들에 비추어 보건대, 문화재단과 추진단은 처음부터 이 A업체와의 사이에 모종의 합의가 있었으며, 이들이 예술감독을 선임한 것은 시민사회와 언론 및 예술계로 부터 그럴듯한 명분을 얻기 위한 위장이었고, 또, 결과적으로는,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도출해 내기 힘든 실행 아이디어를 예술감독으로 부터 얻어내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은 겉과 속이 다른 사업운영의 결과는 매우 참담한 수준의 전시로 나타났습니다. 통영국제트리엔날레를 수용할 만한 전시장이 없는 통영시에서 대체공간을 찾기 위한 예술감독의 노력에 대해 재단과 추진단은 시종일관 비협조적이었으며, 마지막으로 선택한 ’주제전‘ 공간은 층고가 낮은 일반사무실건물을 사용함으로써, 보기 드물게 답답한 관객동선과 단조로운 공간연출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통영시민들 사이에서 ‘주제전이 보이지 않는다’(통영신문, 2022.04.22. “통영국제트리엔날레 주제전이 안보인다”)는 지적이 나온 것은 극히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그리고 본 전시 외에 부수행사/전시들에서 지역 나름의 역량을 쌓아왔던 사립미술관과 협력하여 추진된 것들에서는 그나마 수준과 의미 있는 행사, 전시가 만들어졌지만, 통영시립박물관의 기존 기획전시에 몇 개의 작품을 대여해 와서 더해 급조된 것으로 보이는 ‘수작수작(手作秀作)’전에서는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서 열린 ‘삶의 수작’전(2015.10.08.~2016.02)의 소주제였던 ‘수작(手作)’과 ‘수작(秀作)’이라는 제목을 표절했으며, 대부분의 전시작품들이 제작연도와 출처 혹은 작가명도 표기되지 않은 채 전시되어 있어, 이것이 과연 대한민국의 공공기관이 주관하여 만든 전시회인지 눈을 의심하게 하였습니다. 지방정부와 그 산하기관의 이름으로 이같은 수준의 전시가 개최되고 언론을 통하여 홍보된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이 조잡한 전시에 실로 막대한 액수의 예산이 투입되었다고 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누구라도 거기에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 협회는 이러한 지방정부 주최의 문화예술행사가 처참하게 실패한 일련의 원인에 대해 철저한 검증과 복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제1회 통영국제트리엔날레는 근래 우리나라의 지방정부 및 산하문화재단에서 시행하는 문화예술행사들이 보여 온 갖가지 편법과 문제점들을 거의 모두 노출한 “가장 나쁜 문화예술행정의 전형”이라고 판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향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이와 관련된 모든 사실들을 엄중히 조사하여 그 전말을 투명하게 밝혀줄 것을 관계기관에 호소합니다.
이와 함께, 본 협회는 문화예술행사를 주관하는 정부, 지자체, 공공기관 등에게 문화예술행사의 기획과 운영에 있어 다음과 같은 원칙을 반드시 준수할 것을 아래와 같이 엄중히 촉구합니다.
- 공공문화사업을 정치인의 선거용 예산투입, 세몰이, 치적홍보 등의 정치적 도구나 수단으로 악용하지마라.
- 행정사무 담당부서가 예술감독 등 전문인력 위에 군림하지 않도록 직권남용과 갑질 등을 방지하고 문제 발생시 해결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
- 예술감독, 기획자 등이 공공을 위한 업무를 안정적인 조건 하에서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표준계약서 등의 도입을 조속히 추진하라.
- 본연의 목적에 맞는 성공적 행사개최를 위해, 예술감독, 기획자와 행정부서의 임무와 권한에 관한 합리적이고 적절한 업무분장이 이루어지도록 관리 감독하라.
- 사업기획 단계에서 예술감독, 기획자의 창작 아이디어를 표절, 도용하여 건강한 문화예술 생태계를 왜곡하는 행위를 근절하고 저작권 보호를 강화하라.
한국문화예술기획자협회 회장 이원곤